꾸역 꾸역 쟁였다가 쏟아놓는 이야기들 life
2010.06.25 18:37 Edit
그 축제에 나는 끼어들기 힘드오.
2002년, 나는 월드컵을 저주했다.
축구 열기는 광풍이었다. 사람들은 완전히 흥분해서, 그 열기에 동조하지 않는 이는 이단자 취급했다.
나는 그 광풍 밖에 있었다.
함성 소리, 불어대는 나팔 소리, 외쳐대는 구호들, 전부 다 견딜 수 없도록 짜증났다.
소음을 소음이라 할 수 없는 그 상황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.
2010년, 나는 여전히 월드컵 밖에 있다.
그러나 저주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.
나는 그 동안 어떤 이론 - 아마도 누군가가 먼저 발견했을 - 을 번뜩 깨달은 것이다.
일상에 찌든 이 많은 사람들은, 흥분과 난장을 쏟아놓을 축제가 필요한 것이겠지.
그놈의 '하면 된다' 정신 아래에 노예처럼 매여있는 이 사람들이 마음놓고 열광할 수 있는 분위기 말이다.
자못 불쌍하다는 투로 말했지만, 사실 어떤 면에서 더 불쌍한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.
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'열기'에 휩쓸리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.
나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자리를 터득했고, 그렇게 동요되지 못한 채 그 밖에 서 있다.
군중 속에서 흥분이 끓어오르려 할 때마다, 스스로를 검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.
마음 속에서 자꾸만 딴지를 걸며, 관찰자의 입지를 강요하는 나를.
사람들이 욕하거나 열광할 때마다 나는 무심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- 축구가 아니라 사람들을.
물론 이렇게 무관심한 건, 축구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.
범죄 망상이 차지한 자리
내가 기억하는 한, 나는 단 한번도 산타 클로스를 믿은 적이 없다.
누가 '그건 거짓말이야'라고 알려 준 적도 없었지만 나는 알았다. 그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.
동화 속 요정과 마녀 역시 조금도 믿을 수 없었다.
나는 의심이 아주 많은 꼬마였다.
귀신도, 도깨비도 무섭지 않았다. 믿지 않았으니까.
홍콩할매귀신도, 2층에서 창문을 들여다보는 귀신도, 변소의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.
깜깜한 한밤 중, 혼자 깨어나 화장실을 갈 때면 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지만
그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어둠과 밤의 분위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.
그렇지만 나는 겁이 많았다. 금새 겁에 질려 뻣뻣하게 굳어버리고는 했다.
선명하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공포 중 하나는, '말 그림' - 정확히는 책 표지였는데...
적갈색의 뛰어가는 말이 그려진, 옛 홈즈 전집 중 <사라진 명마>의 표지였다.
그 책을 사촌 오빠에게서 빌려오고는, 읽다가 머리 맡에 놓아두고 잠이 든 것이다.
주변이 푸르스름한 새벽, 눈을 뜨니 머리맡에 그 그림이 보였다.
...몸이 오그라들 듯 무서웠다. 눈을 희번덕대며 달려가는 말! 묘하게 촌스러운 색채 때문에 더 무서웠던 말의 모습.
(그리고 <얼룩무늬 끈>. 컴컴한 방안에 서 있는 여자... 여자의 목을 죄는 얼룩무늬 끈... 뒤로 허옇게 넘어가던 여자의 눈...
으아아아아아아아악 대체 그걸 왜 머리 맡에 놓고 잤을고.)
나는 여전히 의심이 많고, 여전히 겁이 많다.
<드래그 미 투 헬>은 분명 공포영화였지만, 나에게는 코미디였다.
무섭다고? 무서움은 손톱만치도 느낄 수 없었는걸!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. 아무리 그래도 공포영화인데...
뭐, 당연한지도. 나는 초자연적인 것을 느낄 수 없으니까.
이것은 긍정과 부정의 문제가 아니다. 그들은 분명 존재할 지도 모른다.
그렇지만 존재하는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은, 적어도 나는 아닌 모양이다.
초자연적인 존재에서 자유로우니 꽤 용감해야 할 것 같지만, 그럴리가...
나는 순간순간 두려움에 움찔거린다. 공포의 자리는 비어있지 않다.
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바로 '범죄 망상'.
망상이 확실하다. 한밤 중 창을 열면, 거기 왠 살인마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.
...아파트 14층 창문에 매달린 범죄자라니, 귀신과 다를 게 뭐야?
걷다가 주차된 차 곁을 지나게 되면, 순간 차문이 열리면서 누가 나를 채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고
집에 강도가 들면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, 청소기를 집어던져야 하나 선풍기를 집어던져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.
당연히 택시는 타기 싫고, 음료수를 마시던 중에 자리를 비우면 안된다는 생각을 종종 하며,
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죄없는 이웃을 보며 괜스레 불안해지곤 한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추리 소설을 읽고, 수사 미드를 본다.
어릴 때도 그렇게 무서워했으면서. 나는 여전히 이것들에 목말라서 산다.
살아있는 존재, 그 중에서도 사람을 더욱 겁나게 하고 더욱 못 믿게 하는 그런 얘기들에 목말라서 말이다.
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나서 늙기 위해 자란다.
그러니까 잘 자라서, 잘 늙어서, 잘 죽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.
- 라고 나는 생각한다.
포동포동한 아가들아, 너희는 무사히 잘 태어나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구나.
이제 무탈하게 잘 자라서, 무사히 인생을 견뎌내며 잘 늙고, 그리고 비참하지 않게 잘 죽어야 한단다.
평생 우리가 하는 일은 그거야.
우습게 보지 말으려무나.
그것만큼 어려운 게 또 어디 있겠니?
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짜증 속에서 일주일 살기
날씨 탓은 아니고, 근 일주일을 짜증에 휩싸여 보내고 있다.
짜증은 짜증을 부른다.
모든 것이 피곤하고, 성질을 돋우며, 볼썽 사납고 형편 없다.
뭘해도 즐겁지가 않다.
아무것도 힘들 일이 없는데 나는 쉬고 싶다.
내가 내 성질에 못 견뎌서 세우고 실천하는 그 모든 계획에서 쑥 빠져나와
쉬고 싶다. 한없이 게으르게.
빈둥거리고 있다는 부담감과 죄책감 따위 한 구석으로 걷어 차 버리고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