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.
종로에서 <굿바이 칠드런> 감상.
아이들.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다. 그러니까 몇 년 전이었다면 지금보다 지루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. 그 때는 '아이'라는 존재를 마냥 싫어했으니까. 지금도 '아이'라는 존재가 머릿 속에 품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. 하지만 언젠가부터 보호자가 아닌 관찰자의 입장 정도는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.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. 어쨌든.
마지막 장면, 정확히는 마지막 내레이션이 남기는 여운은 상당히 짙다. 감상적인 수식의 여지라고는 일절 없는 그 흔한 말들이 주는 울림은 예상보다 강했다. 이것의 실화의 힘이라는 것이겠지.
그 아이가 살아주었으면 했다.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니까. 사실이니까. 있었던 일이니까.
그 아이는 특별했어. 어떤 면에서는 정말 특별하고 빛나는 아이였지. 감수성이 빛나는 영리한 아이. 공포를 숨기지 못했던 아이.
그렇지만, 세상에 빛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. 누군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이가 어디있어. 사연없는 죽음은 그 어디에도 없는 법.
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절멸시키는 건 너무 간단한 일.
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 속 어디선가 견디기 힘든 것이 들끓어 오른다.
나는 비극이 싫고, 마음 아픈 게 싫어.
결국 그것이다. 내가 문제적 인간이나,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시대의 특수한 광기에 끌리는 것은- 나는 겁쟁이이기 때문이다. 광기에 눈감아 버리고 광기를 이해하지 못하면, 폭주를 막을 수도 없다. 그리고 내게 그런 폭주를 막을 힘은 조금도 없다는 게 현실이라 해도, 그런 광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'나'를 보호할 수도 없다. 그런 무차별적이고 부조리한 폭력이 내게 닥쳐왔을 때, 그걸 이겨내고 받아들이고 자유로워 질 수도 없을테니까. 이해하고 체념한다는 건 용서보다 선행되어야 할 감정이겠지.
2.
과거 얽혔던 어떠한 사건때문에 불편하다는 것은 둘째 일이다.
대화할 공통 화제가 없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고역일 수 밖에 없다.
세상에. 예전에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걸까.
그런 사람과는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.
일부러 피할 이유는 없다해도, 무언가를 '입증'하기 위해 굳이 얼굴 마주할 필요는 없는 거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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