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.
누군가 인간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고통이라 했다.
대학 때 어느 교수님이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이었다.
(유명한 서양 철학자였던 것 같은데... 이런 거 외우는 건 왜 젬병이냐)
나는 그 때 그 말을 곱씹으며 공감으로 머리칼이 약간 곤두섰다.
응, 그래 맞아. 사랑도, 증오도, 허무도 아니지.
고통이 맞아.
돌이켜 생각할 때, 따지고 보면 내가 10대에 그렇게나 매달렸던 것도 고통이었다.
변치않는 고통, 언제나 내 뒷덜미를 잡아채는 우울, 뭐 그런 것을 손에 넣고 싶어 안달이었으니까.
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런 걸 손에 넣지 못해서 천만 다행이지. 어린 것이 인생 무서운 줄 모르고.
그런 게 없어도 나는 울고 소리지르고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잖아.
그건 그렇다 치고 - 어차피 이제 십여 년 전 일이 되어가는 이야기 -
지금의 문제는 그것과 연결점이 있지만 다른 것이다. 같은 소재이지만 주제는 다르달까 하여간.
그러니까 나는 왜, 고통이 아니면 진심이라고 느끼기 어려울까. 경쾌함과 즐거움과 행복감 같은 것은 왜 표현의 대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? 왜 가슴을 후벼파야 진짜라고 생각해? 내 생활 매일 매일이 지옥인것도 아니잖아? 식구들이랑 깔깔거리며 잘 살고 있는 주제에 이렇게 컴컴한 음과 절망적인 단어만 뽑아내는 게 더 가식적이잖아?
그렇다고 딱히 내 인생관이 비관적인 것만도 아니잖아. 내 감정이 순간 순간 나락으로 치달을 뿐이지 - 그것도 일정 시기에만.
그런데 왜 그 일정 시기로 모든 것을 대변하려고 하는 걸까?
못난 놈.
2.
오늘이 상영 마지막 날인 줄 알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종로까지 <나는, 인어공주>를 보러 갔다.
(집에 돌아와서 검색하니 다음 주 연장 상영 시간표가 나와있었다. 쳇. 조금만 더 늦게 확인했더라면- 더 게으름 피워서 좋을 건 없지만.
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마일리지로 결재 가능하다길래 홀랑 긁어서 돈 안쓰고 영화보고 나니 기분은 꽤 좋았음.)
나름 흥겨운 진행이었고 귀여운 장면들도 있었지만 취향에 안 맞아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. 그런데 결말에서 완전 배신 때렸어. 사람 방심하게 만드는 시퀀스였다니까.
그때까지 쌓아왔던 분위기를 한 방에 무너뜨려서 꽤 충격적이었다.
사실 자본주의 사회의 은유라는 이야기를 먼저 접하지 않았다면 개인적으로 아주 짜게 평가했을 영화다. 그냥 '21세기로 옮긴 동화' 따위에는 관심 없으니까 - 게다가 그 찌질한 안데르센의 <인어공주>라면 더더욱 -.
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은유라는 '선입견'을 깔고 보니, 적절하고 경쾌한 연출 솜씨가 높이 평가할 만 했다. 호흡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.
덧. 나는 그 남자배우 별로 잘생긴 줄 모르겠던데. 목소리는 좋더라만.
3.
돌아오니 책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누런 H뮤직 상자.
B님의 블로그에서 들었던 곡이 좋아 전부터 갖고 싶었던 Depeshe Mode의 Songs of Faith and Devotion -
못 사는 줄 알았다. 품절이라 위시에만 올려놨었는데 재입고 된 줄도 모르다가 우연히 대기 중인 것을 발견...
...왕 좌절했으나 그 다음 날 대반전: 대기가 풀린 것을 보고 눈이 뒤집혀 당장 구매했음.
역시 좋구나. 근데 이상하게 짝수번 트랙들만 귀에 붙네.
모군이 추천한 Tori Amos. 데뷔 앨범인 Under the Pink는 지금 듣기에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된다.
이 음반도 한 장밖에 안 남아있어서 서둘러 구매하긴 했는데, 분명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부분이 있는데 그보다는 팝적인 느낌이 강해. 파워풀하고 주줄적인 목소리는 손톱만치 나오다가 다시 가느다랗고 날카롭게 노래부르니 쩝... 이 뮤지션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는 좀 더 이후에 발표된 음반을 더 들어봐야 가늠이 될 듯.
4.
내일부터 일 나가네. 음.
마음이 이상하게 살짝 복잡 미묘해지려고 하니 그 생각은 이쯤에서 멈추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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